[성산칼럼] 추석 유감, 모두들 행복 하셨습니까?
[성산칼럼] 추석 유감, 모두들 행복 하셨습니까?
  • 이형로
  • 승인 2019.09.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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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김제발전의 새로운 전기로 삼아야"
이형로 라디오김제 진행자/김제뉴스 DB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왔다 갔다. 몇 년 만에 이어지는 궂은 날씨 속에서 맞은 추석이었다.

대목 앞에 지나간 태풍은 수확을 앞 둔 농민들에겐 커다란 시름을 안겨 주었다. 필자에게는 이젠 감흥도 없는 나이에 맞는 명절이어서 별다른 느낌도 없다.

하지만 잠시 명절 기분을 느끼고 싶어 거리를 걸어 보자 나섰다.

집 대문을 나서니 동네 기운이 달라 첫 느낌부터 달랐다. 다른 해와 달리 동네 고샅길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차들의 수가 줄었다.

지난밤에 봤던 차들은 변함이 없었다. 와야 할 이들은 다 왔다는 뜻이다.

세상을 떠나버린 앞선 이들의 자식들임을 나타내던 자리가 비었다. 또한 왔던 이들도 서둘러 떠나 자리가 더 비었다. 동네부터 모습과 사정들이 변했다.

동네를 나서 거리를 걸으니 지난해와 다른 하나를 볼 수 있었다.

해년마다 거리에 넘쳐나던 지역 단체 이름을 단 ‘귀향 환영’ 현수막의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

그저 내년 국회의원 입지 자들의 ‘행복한 한가위 기원’ 현수막들만 걸려있을 뿐이었다. 세상도 변하고 있었다.

한 아파트 입구를 지나다 자식들을 배웅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장성한 손주의 턱을 만져주며 뭔가를 얘기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할머니는 무엇을 이야기 했을까?’

그 할머니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앞으로 열심히 살고 더 건강하고 행복하라’ 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예전 필자를 배웅해 주던 부모께서도 그랬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경험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믿는다.

이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으니 살아가는 이유, 즉 ‘삶의 가치관’은 비슷하리라 필자는 굳게 믿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삶’ 혹은 ‘오늘 같은 행복한 삶’을 우리 모두 꿈꾸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내가 사는 ‘이 곳’ ‘이 시간’ ‘이 사람들’을 주목한다. 살아가는 ‘이 공간’ ‘이 시간’은 항상 그대로 여도 ‘이 사람들’은 변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람들’에 주목한다.

우리는 지난 해 우리 동네를 이끌어 갈 ‘이 사람들’을 뽑았고 꼬박 일 년이 넘게 지켜보았다. 선출된 ‘사람들’이 보여준 행적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동네 살림을 책임지고 경영하라고 뽑은 시장은 살림과 경영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박 시장은 시민들의 요구에 화답하겠다며 ‘인사 정의와 경제 도약’을 기치로 내걸고 취임 후 자신의 모든 행보의 근거로 삼았다.

인사마다 보여주는 행간을 읽어보면 시장 자신이 말한 ‘인사 정의’는 사라지고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시장의 불편함만 두드러질 뿐이었다. 또 시민을 위하겠다는 ‘경제 도약’은 시청 현관의 간판 구호로만 선명하다.

또한 시 살림을 살피고 견제 감독 하겠다 하여 뽑은 시의원들은 여전히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의혹이 불거지는 곳에서 그들의 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다. 이러니 ‘선출된 사람’들의 꿈을 알 수가 없다.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알 수 있다. 끝은 알 수 없으나 동인지 서인지를 말이다.

‘행복한 한가위를 기원합니다’라는 그들의 현수막 글귀를 보면서 헛웃음과 참담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필자에게만 국한된다면 다행한 일이다.

‘선출된 그들’의 꿈을 알 수 없는 참담함을 털어내 주는 일, ‘선출된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추석 명절을 지내고 ‘그들’이 시민에게 줄 선물은 2019년 추석 명절이 ‘추석 이전의 김제’와 ‘추석 이후의 김제’로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이번 추석, 모두들 행복 하셨습니까?/이형로 라디오김제 진행자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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