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40주년'...김제 출신 이세종·조성만 열사의 쓸쓸한 추모식
'5·18 민주화운동 40주년'...김제 출신 이세종·조성만 열사의 쓸쓸한 추모식
  • 임현철 기자
  • 승인 2020.05.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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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김전라고 동문회 주관 시민 등 10여명만 참석
추모비도 시민공원 후미진 곳에 세워져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김제시민운동장에 세워진 추모비에서 김제 출신 이세종·조성만 열사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이날 추모식에는 시민 등 10여명만이 참여해 아주 조촐하게 진행됐다./김제뉴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김제시민운동장에 세워진 추모비에서 김제 출신 이세종·조성만 열사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시민 등 10여명만이 참여해 아주 조촐하게 진행됐다./김제뉴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김제시민운동장에 세워진 추모비에서 김제 출신 이세종·조성만 열사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이세종 열사의 모교인 전라고등학교 김제동문회가 주관한 이날 추모식에는 지난해와는 달리 동문과 시민 등 10여명만이 참여해 아주 조촐하게 진행됐다.

이세종 열사는 전북대 재학시절인 1980년 5월 17일 계엄군에게 쫓기다 대학 학생회관 옥상에서 떨어져 숨져 5·18 최초 사망자로 인정됐다.

이 열사의 죽음은 광주지역에서 처음 인명피해가 발생한 18일 오후보다 이른 시간 신군부에 의해 타살된 5월 항쟁의 첫 희생으로 5.18의 엄청난 비극을 예고하는 서곡이 된 셈이었다.

특히 이 열사의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을 '두개골 골절 및 두개강내 출혈'로, 부검 결과는 '상박골 및 슬개골 골절, 간장파열, 복막후강내 출혈'로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계엄군은 이 열사의 사인에 대해 학생회관 2층에서 농성중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옥상으로 달아나다 떨어진 '단순 추락사'로 발표, 사건을 축소해 버렸다.

이 열사는 1959년 7월 16일 김제시 교월동 연정리에서 출생해 전주 전라고를 졸업했다.

또한 조성만 열사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88년 5월 15일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5·18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성당 친구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후 할복 투신했다. 스물넷 짧은 삶이었다.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외치며 투신 전에 뿌린 유서는 80년대 청년들의 심금을 울렸다.

조 열사는 1964년 12월 13일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에서 태어나 전주 해성고를 졸업했다.

전라고 김제동문회 한 관계자는 “김제의 자존심인 두 열사가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며 ”지난해보다 시민들의 관심이 적어 다소 쓸쓸한 추모식이었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일부 시민들은 이 열사와 조 열사의 추모비가 너무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추모 행사도 김제시가 주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임현철 기자(limg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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